나쓰메 소세키 <하룻밤>

 

한여름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의 一夜을 읽고-

 

 

 

2017102737 일본어학과 정재원

 

 

 

오랜만에 도련님을 읽으려 꺼낸 책에 하룻밤이라는 단편집이 실려있었다. 도련님을 읽으려다 페이지 수가 잘 안 넘어가 별생각 없이 뒤편의 소설을 읽다 보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룻밤>은 세 명의 이름 모를 남녀가 꿈에 대해 논의를 하다가 잠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만큼 소설 자체도 꿈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이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절대 정보를 주지 않는다.

 

소세키의 문학관은 우리가 배운 듯 초기에는 해학과 풍자가 만연한 소설을 중심으로 쓰였지만, 후기 문학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내용과 인간의 내적갈등을 그리는 소설들이 많이 쓰였다. 이 중에서 <하룻밤>은 후기 작품으로 직접적이진 않지만, 남녀 간의 긴장감이 드러난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를 삼각 구도로 하여, 여자가 굳이 성적인 묘사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사람임을 어필하고 있다. 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구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여 남성들이 여성을 유혹하거나 꾐을 노리는 행동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소설들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그저 이들은 남들이 봤을 때 공상이라 느끼는 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뿐이다. 그마저도 진지하게 논의한다기보다 각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고 주의가 조금은 산만한 듯한 우리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루는 것만 같다. 그렇게 본래 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때쯤 이들은 나란히 잠이 든다. 이 그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인지 혹은 웃고 떠들다 지쳐 소곤소곤 잠을 청하는 친구들의 모습인지 그 경계는 모호하다. 한편으로는 젊은 남녀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지만 녹음이 푸른 계절, 비가 내리는 밤 이들이 존재하는 시공간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고 몽환적이다. 그저 이 역시 소세키의 명확하지 않은 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꿈꾸는청춘의 단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은 시각과 청각이 주요한 심상을 이루고 있다. 특히 색채를 이용한 단어들의 사용은 독자로 하여금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라는 어두운 배경을 이용하여 등불, 빨간불 등 다양한 색감을 이용하여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기서 한가지 눈 여겨지는 부분은 여인이 목소리를 색채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목소리를 노란색, 보라색으로 나타내거나, 그림 속 사람의 목소리를 유추해보는 등 다양한 공감각적 표현을 이용하여 소설이지만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소설에서 특이한 점은 개미의 시각에서 서술이다. 여인의 무릎 위에 올라간 개미에 독자가 집중하게 되는 시점에 갑자기 개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서술되어있다. 이는 소세키의 참신함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또한, 청각에 의해 분위기가 환기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두견새가 우는 장면에서 세 명의 대화는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말인즉슨, 구체적인 사물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추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는 부분에서 이 장면에 집중이 되었다가 다시 의식에 흐름에 이어 서사가 진행된다. 이러한 부분 역시 소설 속에서 시의 기능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번 더 이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초인종 소리이다. 이웃집에 손님이 들어오는 풍경을 보는 세 사람은 이것을 평면으로 눌러 놓으면 그림이라며 일상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다다미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1905년에 쓰였다. 당시 근대 문물이 들어온 이 시점에서 새로운 것을 동경한다기보다 일본 전통적인 문화와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새와 곤충이 이 소설의 정취를 더해준다. 개미와 거미, 모기. 두견새와 뻐꾸기. 한 여름밤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다. 소세키가 이러한 점 때문에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칭송받는 것은 아닐까? 이들이 잠이 들면서 그들이 그렇게 찾고자 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마치지 못했지만 아마 이에 대한 답과 결론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들만의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하룻밤자체로 그들의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통해 소세키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굳이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나 새롭게 첨예한 대립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도 그저 편한 분위기,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느낌인지만 알겠고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다 보니 장면이 그려지고 내가 그 분위기에 이미 같이 들어가 있는지라. 110년 이상 지난 단편 소설임에도 현재 나에게 감명 깊게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소세키가 명필인 것도 있겠으나 이러한 일상에서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 인위적으로 아름다움을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꿈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 있다. 꿈이 꼭 아름답지도 않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지만 우리는 항상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인간이 느끼는 것은 같은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이 소설이 관통하는 것은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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